배동신의 흑백 사진 — 안경을 쓰고 담배를 든 모습

아버지의 방

배동신 裵東信

1920 – 2008 · 수채화가

만일 유화가 육식에 비유될 수 있다면 수채화는 채식이라 할 수 있다. 유화가 동적이며 극적인 감동을 연출한다면, 수채화는 상큼하고 은은한 아름다움을 전해준다. — 배동신, 인터뷰에서

한국 수채화의 선구자

평생, 수채화만을

1920년 광주 송정에서 태어나 열일곱 살에 일본으로 건너가 그림을 공부했다. 1943년 가와바타 미술학교 양화과를 졸업하고, 같은 해 일본 자유미술창작가협회전에 「소녀」로 입상하며 화가의 길에 들어섰다.

해방 후 고향으로 돌아와, 모두가 유화를 그리던 시절 유화의 밑그림 정도로 여겨지던 수채화만을 평생 고집했다. 스물여섯 번의 개인전을 열었고, 수채화창작가협회와 한국수채화협회의 초대 회장을 맡아 수채화를 회화의 한 장르로 끌어올렸다. 파리 화풍의 영향을 받고 일본 화풍을 거쳐, 동양과 서양이 어우러진 드문 화풍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누드, 과일바구니, 항구, 산을 주로 그렸는데, 특히 광주에 있는 무등산을 즐겨 그렸다. 대부분 수채화로 제작하였는데, 큰 붓을 이용한 빠른 필치를 보여주며, 과감한 생략과 확대를 통해 대상을 변화시켰다. 또한 자유로운 선의 사용으로 운동감과 양감을 표현하였다.[출처: 배동신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989년 여수로 내려가 마지막까지 남도의 바다와 배를 그렸다. 2000년 보관문화훈장을 받았고, 2008년 12월 여수에서 세상을 떠났다.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과 일본 도쿄 우에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대표작

사람, 산과 바다, 쟁반 위의 과일

사람 — 자화상과 초상

남도의 산과 바다

정물과 누드

인증 작품

한 곳을 응시하며

동신의 작품에 대한 일반적인 특별함은 소재의 제한성과 테크닉의 부재이다. 산, 바다와 배, 쟁반에 담긴 과일, 똑같은 포즈의 여인 누드, 자화상과 여인 초상을 그린 인물… 동신은 남도의 풍광 속에서 한 곳을 응시하며, 기법을 무시한 자유로운 조형적 구성의 운용을 미끼로 회화의 본 모습을 낚아 들이는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 「동신의 작품 세계」, 배동신 공식 사이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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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

그를 기억하는 말들

불모의 한국 수채화에 배동신의 존재는 절대적으로 필수적이다.
미술평론가 이경성
그림을 향한 광적 집념
평론가 Perry A. Bialor · 1990
한국 수채화의 1인자
일간스포츠 · 1982
한국 수채화의 절대적 존재
매일경제신문 · 1986
세계적인 수채화 작가로서 유화의 밑그림 정도로 인식되던 수채화를 회화의 한 장르로 격상시키는 데 기여하였으며, 척박한 지방 화단의 발전을 위하여 헌신함.
보관문화훈장 공적 내용 · 2000.10.16
東信畵廚 네 글자가 쓰인 현판 글씨

東信畵廚 · 동신화주

‘동신의 그림 부엌’. 서예가 소전 손재형 선생이 배동신에게 써 준 현판 글씨입니다.

영상

영상으로 만나는 배동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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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보

배동신 연보

아버지와 아들

2023년 7월, 1919년 2·8 독립선언의 현장인 도쿄 재일본한국YMCA에 아버지의 수채화와 아들 후랭키의 디지털 아트가 함께 걸렸습니다. 20세기의 수채화와 21세기의 디지털 아트가 한 공간에서 만난 부자전, 「배동신, 후랭키展」. 그때의 기록 →

아들 후랭키가 쓴 아버지의 삶 이야기는 배동신 공식 사이트 ↗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